안녕하세요, 지난주 난생 처음 AI 영화를, 그것도 10편이나 보게 된 장준영입니다.
지난 7일 서울영화센터에서 열린 '런웨이 AI 페스티벌(AIF) 2026' 상영회를 다녀왔습니다. 2022년 미국에서 시작된 행사로 AI 영상 플랫폼 런웨이(Runway)가 AI 창작자를 조명하기 위해 마련한 영화제입니다. 수상작은 뉴욕과 로스앤젤레스를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상영되는데, 올해는 MBC C&I와의 협업으로 한국에서도 수상작을 만나볼 수 있게 됐습니다.
수상작은 총 10편으로 모두 3분에서 15분 내외의 단편이었습니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엔 기대 반 우려 반이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경험한 AI 영상이라고 해봐야 AI 티가 팍팍 나는 광고가 대부분이었거든요. 영화제에서 수상까지 한 '작품'은 대체 퀄리티가 어느정도일지, AI 티는 정말 나지 않을지 궁금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영화가 상영되는 약 1시간 30분 내내 집중해 봤습니다. '아주 재미있었다' 정도의 감상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거 AI로 만들었네'하는 생각에 방해받는 일은 없었습니다. 기존의 AI 콘텐츠와 뭐가 달랐기 때문일까 고민해봤는데 크게 두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완성도'와 '기술이 쓰인 방식'입니다.
우선 만듦새가 좋았습니다. 특히 시각적으로 실사와 구분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습니다. 등장 인물이 장면마다 동일하게 유지됐고요. 감정도 잘 전달됐습니다. 작품마다 비주얼 완성도에 편차는 있었지만, 몰입을 크게 해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AI 광고들이 그렇게 어색한 이유는 순전히 예산 탓이었구나, 시간과 노하우만 있다면 불쾌한 골짜기는 충분히 극복할 만큼 기술력이 올라왔구나 싶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사운드와 스토리도 몰입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비주얼만으로는 잘 전달되지 않는 분위기와 감정을 보완해줬죠. AI 영화는 보통 한 두명이서 제작하기에 엔딩 크레딧이랄 게 따로 없었음에도, 일부 작품에서 각본과 사운드(프로덕션)가 이름을 올렸다는 점을 보면 이 둘의 중요성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만듦새가 좋은 대표적인 작품이 그랑프리를 받은
'A Face Only A Mother Could Love'입니다. 흠칫 놀랄 만큼 기괴한 얼굴을 지닌 한 남자가 어느 핼러윈 밤 사랑을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영화 제작 경험이 없는 캐나다 출신의 감독이 혼자서 하루에 17시간씩 2주에 걸쳐 만든 작품이라는데요. 만약 독자 여러분 가운데 AI로는 인간의 미묘한 감정을 전달할 수 없다고 믿는 분이 계시다면 이 작품 한번 보시길 권합니다. 생각이 바뀔지도요.
그 다음이 AI를 사용한 방식입니다. 얼마 전 이동진 평론가가 영화 '오디세이'의 기술력을 두고 이렇게 말했더군요. "기술을 양각하지 않고 음각했다." 뛰어난 기술이 사용됐음에도 '이것 좀 봐라' 하며 내세우지 않고 인물과 이야기에 봉사하게끔 뭉툭하게 연출했다는 뜻인데요. 이번 작품들에도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I를 과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부감도 덜했던 것 같거든요.
다만, AI 콘텐츠만의 차별점도 분명 있었습니다. 특히 현실적인 배경에 기괴하거나 이질적인 요소를 자연스럽게 삽입할 때 AI의 힘이 톡톡히 발휘됐습니다. 예컨대 작품상을 받은 '
Costa Verde'는 프랑스 출신 감독이 코르시카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기억을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옮긴 성장 단편입니다. 숲속에서 마녀를, 도로 옆 들판에서 용을 만나는 등 아이의 시선에서 현실과 환상이 자연스럽게 뒤섞이는 연출이 특징인데요.
시각적인 요소만 놓고 보면 CG로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이긴 하지만 이 정도 규모의 단편 영화에선 비용 문제로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죠. 이제는 AI 덕에 누구나 상상하던 걸 의도에 맞춰 표현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이처럼 AI 영화 10편을 보고 느낀 건 '좋은 AI 콘텐츠도 많구나' 하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사실 AI 콘텐츠에 대해선 부정적인 목소리만 들리는 요즘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기획 콘텐츠도 저품질 양산 콘텐츠를 일컫는 'AI 슬롭'에 대한 기업과 플랫폼의 현주소를 다루고 있고요. 하지만 개인도 기업도 AI를 안 쓸 수 없잖아요. 그러니 AI로 제대로 된 걸 만드는 능력은 더욱 중요해질 텐데, 그럴수록 좋은 AI 콘텐츠를 많이 보고 공부하는 과정이 필요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AIF 2026 수상작 10편은 모두 유튜브에서 무료로 보실 수 있습니다. 시간 날 때 한 번쯤 시청해보시기를 권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