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석영입니다. 올 한 해도 벌써 두 달밖에 안 남았는데요. 아침저녁으로 급격해지는 일교차와 함께 연말 분위기도 점차 짙어지는 것 같습니다.
조금 이르지만, 지난 1년간의 디지털 산업을 돌아보면 내내 'AI' 이야기가 반복됐던 것 같습니다. 특히 실무 파트너로 완전히 자리 잡은 AI와 '어떻게 협업할 것인가'는 주된 화두였죠. AI를 팀 구성원처럼 여기는 'AI 네이티브' 조직을 선언하는 회사들도 곳곳에서 등장했고요.
그런데 요즘 들어 질문의 결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AI 협업으로 개인 업무 생산성은 향상되는 것 같은데, 그래서 이것이 회사의 실제 '성과'로 어떻게 이어지냐'는 물음입니다. 최근 다녀온 AI 컨퍼런스 '씽킹AI 서밋 서울' 역시 바로 이 'AI의 속도와 비즈니스 속도의 간극'을 다뤘습니다. 이 자리에서 AI 협업 프로세스를 비즈니스 성과로 잇기 위해 변화를 모색하는 기업들의 사례가 소개됐는데요.
그중 인상 깊었던 사례는 블루홀 스튜디오 Seed팀 이승현 디렉터의 이야기였습니다. 크래프톤 산하 게임 개발 스튜디오인 블루홀 스튜디오의 Seed팀은 AI 에이전트로 실제 게임을 만드는 개발팀입니다.
이승현 디렉터의 문제의식은 명확했습니다. 게임 개발의 진짜 병목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겁니다. 이 디렉터에 따르면, 게임 개발 8단계 중 6단계가 문서 작성, 각종 회의, 재승인 등 커뮤니케이션에 소모된다고 합니다. 즉, AI 에이전트로 개발 시간을 아무리 단축하더라도 정작 관계자 간 이해와 합의의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 제자리걸음인 셈이죠. 심지어 기존 방식은 게임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재미' 유무를 맨 마지막에 판단하다 보니, 앞선 기획과 소통이 물거품이 될 리스크도 컸습니다.
Seed팀이 찾은 해법은 이렇습니다. 일단 '75점'짜리를 먼저 만드는 겁니다. 정밀한 소통에 시간을 쓰기보다, 어차피 실제로 플레이해보기 전까지 재미를 알 수 없으니, 선(先) 구현 후(後) 검증 방식을 택한 겁니다.
이를 위해 게임 디자이너 한 명이 여러 에이전트와 협업해 실제 플레이로 테스트 가능한 수준까지 로직을 구현합니다. 디테일은 이후 팀원들이 직접 플레이해보며 채워 나가고요. 또 전담 디자이너가 사용한 프롬프트와 AI 응답은 전부 하네스에 기록해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했습니다.
이러한 업무 방식은 아직 초기 단계지만, 일부 성과가 숫자로 보인다고 합니다. 게임 상 신규 무기 1개를 추가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20일에서 하루로 줄었고요. 신규 몬스터 추가 시간은 약 244시간에서 6시간으로 40배 단축됐다고 합니다. 지난 3개월간 누적된 AI 프롬프트도 2만 건에 달하고요. 무엇보다 이 방식을 반복하며 팀 플레이북을 고도화하니, 굳이 비싼 모델을 사용하지 않아도 돼 AI 비용이 절감됐다고 하고요.
물론 블루홀 스튜디오 Seed팀의 방식이 정답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사례를 통해 생각해볼 지점은 분명 있습니다. AI와 협업한다고는 하는데, 그것을 둘러싼 일들은 이전과 똑같이 유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거죠. AI 협업이 실제 성과로 보이려면, AI를 도입하는 것만큼이나 일하는 방식 자체를 재설계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Seed팀이 문서와 회의를 덜고 75점짜리를 일단 만들기로 한 것처럼요. 올해가 다 가기 전 나와 우리 팀의 일하는 방식은 과연 얼마나 달라졌는지 점검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