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주 만에 인사드리는 장준영입니다. 오늘은
지난 레터에서 다룬 '에이전시 위기론'의 후속 이야기를 전하려 합니다.
2주 전 레터를 읽지 못한 독자분들을 위해 간략히 설명하면, 지난달 말 열린 앤어워드 시상식에서 시대예보 송길영 박사가 에이전시 산업의 몰락을 예측했습니다.
AI의 등장으로 기업은 에이전시에 맡기던 업무의 상당 부분을 직원 뽑아 시킬 것이고, 따라서 단순 대행업만 하는 에이전시가 설자리를 잃을 것이란 논리였는데요.
상받으러 온 수많은 에이전시 앞에서 이런 발언을 할 수 있는 '깡'도 놀라웠지만, 행사 주관사인 한국디지털기업협회를 비롯한 참가사 대부분이 여기에 공감한다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2주간 에이전시 분들을 만날 때마다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에이전시 산업이 몰락할 거라고 보세요?"
이야기를 나눈 모두가 에이전시 산업이 이미 꽤 오래 전부터 위기에 처했다는 데는 동의했지만요. 전망에 대해선 관점이 조금씩 달랐습니다. 그 내용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우선 역량 고도화가 필요하다는 관점입니다. 대행사를 넘어 전략 파트너로 포지셔닝해야 한다는 겁니다. 요컨대 "우리는 시키는 것만 하지 않아. 우리랑 일하면 훨씬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어"라고 어필하는 것이죠. UI·UX하던 곳이 개발까지 하고, 광고하던 곳이 디지털 마케팅까지 품는 흐름도 이런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지난주 만난 한 종합광고대행사의 임원은 회사가 수 년째 새 비즈니스 연구개발에 투자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기존의 TVC 캠페인만으론 경쟁이 심해졌으니, 시니어 산업이나 GEO처럼 앞으로 뜰 분야의 전문성을 지금부터 길러둬야 한다는 판단입니다.
해당 임원은 이 비즈니스들이 "아직은 적자"라며 수 년 뒤를 보고 씨를 뿌리는 것이라 전했는데요. 이처럼 영역 확장 전략을 실행하려면 '수확 시점'까지 버틸 수 있는 금전적 여력이 있어야 하겠고요. 따라서 몸집이 큰 에이전시가 주로 택하는 접근법입니다.
또 한 가지는 인력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는 관점입니다. 에이전시도 여느 산업과 마찬가지로 정규직 중심인데요. 문제는 기업 매출이 프로젝트 수주량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점입니다. 지금처럼 수주 경쟁이 치열할 때는 필요 이상의 인력을 유지하느라 경영난을 겪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죠.
따라서 일부 에이전시는 전통적인 에이전시 모델 대신 작은 전문가 네트워크를 대안으로 꼽습니다. 필요할 때마다 모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흩어지는 방식이죠. 최근 국내에도 작은 전문가 팀이나 프로젝트 기반 스튜디오가 생겨나고 있는데요
(참고 콘텐츠).
고정비 부담을 줄이고 전문성을 뾰족하게 가져갈 수 있다는 점에서 송길영 박사의 '경량문명'과도 맞닿아 있습니다만, 해고가 자유롭지 못한 국내 사정상 규모가 큰 기업보다는 스타트업이나 신생 에이전시에 더 적합한 아이디어로 보입니다.
마지막 관점은 비교적 최근 관측되는 현상으로 '에이전시의 솔루션화'입니다. 개발이든, 광고든, 마케팅이든 자체 솔루션을 개발하는 곳이 늘고 있습니다. 매출 때문입니다. 프로젝트 수주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으니 솔루션으로 회사 가치를 높이고요. 나아가 이를 기반으로 사스(SaaS)까지 선보여 중소·글로벌 고객을 더 많이 확보하겠다는 구상입니다.
특히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은, 그 정반대 사례도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에이전시가 솔루션을 만들어 파는 게 아니라요. 솔루션 팔던 IT 스타트업이 해당 기술을 기반으로 에이전시 비즈니스에 뛰어드는 겁니다. 쇼핑몰 제작 서비스로 시작해 지금은 입점 업체의 마케팅, CS, 배송까지 대행하는 카페24의 비즈니스 모델 변화를 떠올리시면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다만 두 산업군의 핵심 역량이 너무 다른 탓에 서로의 영역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사례를 찾아 보기 힘든 것도 사실인데요. 맨파워와 네트워크를 지닌 에이전시, 그리고 기술력을 지닌 IT 스타트업의 협력이 지금보다 더 활발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그리 허황된 상상은 아닐 것 같습니다.
어쩌다보니 두 번 연속 몰락이니 위기니 하는 이야기를 다뤘는데요. 다음 레터에서는 조금 더 재미있는 주제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