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석영입니다.
가을입니다. 한결 가벼워진 공기가 아침잠을 깨웁니다. 침대 구석에 뭉쳐둔 이불을 배 위로 끌어올립니다. 코끝에 한기가 맺힙니다. 이제 열어둔 창문을 닫을 날이 온 것 같군요.
제게 가을은 상념에 잠기는 계절입니다. 온도의 변화와 풍경의 변화는 새로운 질문이 됩니다. 닿는 것과 보이는 것이 달라질 때면 제 안에서도 불현듯 '너도 뭐 하나 달라져야 하지 않겠니'라는 속삭임이 들리는 듯합니다.
하지만 속삭임의 답은 쉽사리 내놓지 못합니다. 대개 응석 부리듯 대꾸하다, 또 우물쭈물 말끝을 흐리며 흘려보냅니다. 낙엽이 떨어질 때면 계절의 질문도 같이 사그라듭니다. 옷깃을 여미고 한 해의 월동을 준비합니다. 그래서 가을에는 '상념'입니다. '집념'으로 자라지 못한 숱한 생각들이 매해의 가을을 이룹니다.
AI에 생각을 맡기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사고의 외주화'라고 하죠. 효율화라는 명분 아래 AI에게 생각의 기초를 넘겨줍니다. 그러는 사이 봄이 갔고 여름이 갔고 가을이 왔습니다. 문득 가슴이 철렁합니다. 가을의 상념이 되었을지도 모를 생각 덩어리들을 생성형 AI에 집어넣는 제 모습을 발견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조금 기다리면, 무형의 생각들은 그럴싸한 논리로 돌아옵니다. 저는 결국 타협합니다. 이 일목요연한 논리를 저의 결론으로 채택하기로요.
그럴수록 제 안의 밀도가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모든 생각의 선두를 AI가 이끈달까요. 그리고 이 속도전에 상념이 머물 자리는 없습니다. AI에게 가을의 하루는 어제와 오늘, 내일의 24시간과 구별되지 않습니다.
다가오는 가을이 왠지 낯설어 보이는 건 그 때문일까요. 사라진 생각들과 함께 또 무엇을 놓치고 있는 걸까요. 너무 늦기 전에 잊힌 상념을 복원해야겠습니다. 저는 아직 가을의 상념을 허락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