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레터 vol. 069] | 2025.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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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민호 기자입니다. 다들 잘 지내고 계시나요?
곧 장마를 앞두고 있는데요. 치과 가기 전에 맛있는 음식을 사주는 것처럼 흐린 날을 앞두고 요즘은 날씨가 좋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여전히 하늘 보다는 구두를 보고 사는 시간이 더 많긴 하지만, 간간히 하늘을 올려다 보는 시간이 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주말은 주홍으로 아름다운 노을이 하늘을 덮었는데요. 아름다운 하늘은 언제나 마음을 벅차게 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실제 많은 작가들이 하늘을 소재로 여러 이야기를 전하고는 했죠.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설국'에서 마을을 뒤덮은 화마 위로 쏟아지는 한 겨울의 차갑고도 장엄한 은하수가 마음을 휘감는 순간을 묘사하기도 했고, 한 일화에서 나쓰메 소세키는 "I love you"를 "달이 아름답네요"라고 번역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소세키의 일화가 실화인지를 모르겠지만, 달이 아름답다는 말을 우리가 사랑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는 건 같은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에 느껴지는 감정이 주는 특별함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 '애프터썬'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어른이 된 딸 '소피'가 어릴 적 아빠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함께했던 마지막 여행을 어린 자신의 시선으로 회상하는 영화인데요. 영화 속에서 어린 소피는 아빠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가끔 하늘을 올려다봐. 그러다 태양이 보이면 우리가 같은 태양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 그럼 떨어져 있어도 우리는 같이 있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같은 하늘을 보고 있으면 함께 있는 거야."
저는 이 대사를 무척 좋아하는데요.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보느라 서로를 외면하고 외로움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물리적으로 함께 있어도 함께 있다고 느낄 수 없습니다. '같이 있어서 더 외로운 기분'인 거죠. 영화 속 소피도 여행하는 내내 줄곧 아빠와 함께하고 있었지만 아빠의 외로움과 고통을 알지 못했거든요.
반대로 비록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아도, 때로는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면 우리는 함께 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같은 태양을, 같은 달을 보고 있다면, 그리고 그 순간 서로를 떠올린다면 우리는 아무리 멀리 있어도 함께 있는 마음인 것이죠.
어쩌면 같은 하늘을 바라본다는 건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는 확신의 비유일 수도 있겠습니다. "난 언제나 당신을 생각해"라는 거짓말 같은 말의 달콤함도 좋지만, "나는 지금 하늘을 보며 당신을 깊게 떠올려"라는 말의 다정함은 자기 전 떠올라 오늘 하루를 좋은 하루로 바꿔주는 마법과도 같을 수 있으니까요.
흐릿한 장마가 오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오늘 하루만큼은 바쁘게 걷는 사람들의 구두에 익숙해진 고개를 들어 한 번쯤 맑고 예쁜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연인, 부모님, 누구든 혹시라도 마음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문자 한 통을 보내봐도 좋겠습니다. "지금 하늘이 너무 예쁜데, 알고 있어요?"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