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망막진탕에서 힘겹게 회복 중인 장준영입니다.
여러분은 망막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제 경우엔 안구 내 중요한 조직인 줄은 알겠는데, 정확히 어디 붙어 있는 건지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몰랐습니다. 3주 전까지는요.
5월 초 황금 연휴였습니다. 아마 토요일 밤이었던 것 같은데요. 친구와 캐치볼을 하다 날아오는 공에 눈을 정통으로 맞았습니다. 눈 앞이 번쩍,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충격이 심해 길바닥에 누워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는데요.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습니다. 통증은 가라앉았는데 눈 앞에는 번쩍거림이 계속 남아있더군요.
내일이면 괜찮아지겠지 싶었는데 아니었습니다. 자고 일어나니 앞이 안 보였습니다. 정확히는 시야 하단 3분의 1이 어둡게 보입니다. 눈을 감으면 번쩍하는 빛 덩어리가 나타났고, 눈을 뜨면 그 자리가 시커멓게 변했습니다. 머릿속에서 비상벨이 울리기 시작합니다.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하며 챗GPT를 켰습니다. 증상을 입력하자 이렇게 답합니다.
"말씀하신 증상을 종합하면 망막 손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갑작스러운 빛 번쩍임(광시증)과 커튼처럼 시야가 가려지는 느낌(시야 결손)은 망막 손상의 대표적인 증상입니다. 특히 망막박리는 영구 실명 위험이 있어 응급 치료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처음 보는 단어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렇지만 위험하다는 건 알겠습니다. 그 뒤 검색을 통해 얻은 내용을 종합하면요.
망막은 안구 안쪽을 둘러싼 얇은 막입니다. 중학교 과학 시간에 들었던 막대세포니 원뿔세포니 하는 것들이 여기 정교하게 모여있고요. 지금 읽고 계신 글에서 반사된 빛을 감지해 뇌가 이해할 수 있는 신호로 전환해주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합니다. 흔히 '상이 맺힌다'고 말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한 마디로, 우리가 세상을 보도록 도와주는 핵심 조직입니다.
망막이 손상됐다는 건요. 영화관에서 스크린이 망가진 상황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스크린이 찢어지면 그 부위에 영상이 제대로 투영되지 못할 텐데요. 그게 바로 망막박리입니다.
보통은 노화나 고도근시, 지병 등으로 인해 망막을 붙잡는 힘이 약해지거나 교통 사고 등 외부 충격이 가해졌을 때 망막박리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증상이 심하지 않으면 레이저로도 치료할 수 있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안구 절개 수술을 해야 한다고요.
고작 공 하나 맞았다고 안구를 째는 게 말이 되나 싶어 챗GPT에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지니, "시간이 지날수록 망막 손상이 심해질 것"이라는 경고가 돌아옵니다. 그러면서 시력을 보전할 수 있는 골든타임 '36시간'을 제시합니다.
구글 검색으로 크로스체크해보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이게 망막박리든 뭐든 한시라도 빨리 병원에 방문에 정확한 진단을 받을 필요는 있었습니다.
어젯밤 이후로 12시간 정도 지났습니다. 골든타임까지 아직 24시간이 남았으니 내일 중으로 안과를 가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지금이 주말과 부처님 오신날, 대체공휴일이 연달아 붙은 황금연휴라는 사실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동네 안과는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슬슬 초조해집니다. 대학병원과 응급실에 전화를 돌립니다. "죄송합니다. 휴일에는 안과 선생님이 없어요. 다른 곳 알아보세요." 그렇게 서울, 경기 응급실 십수 곳에서 퇴짜를 맞습니다. 덜컥 겁이 납니다. '이러다 진짜 수술해야 하는 거 아냐?'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병원에서 안 받아준다는데 도리가 있나요. 연휴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요. 심란한 마음을 달랠 필요가 있습니다.
안구에 구멍이 뚫리는 상상을 떨쳐내며, 챗GPT에 다시 질문합니다. 내가 이런 증상이 있다. 생각보다 심한 것 같지는 않다. 악화 조짐도 없다. 그런데 36시간 내로 병원에 가지 못할 것 같다. 60시간은 지나야 갈 수 있다. 어찌 될 것 같으냐.
"시력이 유지되고 있다는 건 지금도 골든타임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망막 중심부(황반)가 아직 멀쩡하다면, 48 ~ 72시간 이내 가벼운 치료로도 시력을 보존할 확률이 높습니다."
이게 얼마나 신뢰할 만한 답변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대답을 듣고 마음이 편안해졌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시력이 유지되고 있다는 건'이라는 말에서 '아, 최악의 상황은 면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조마조마한 연휴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방문한 망막 전문 안과. 진단명 망막진탕. 충격으로 망막이 부어올랐을 뿐, 찢어진 건 아니랍니다. 약 먹고 잘 쉬면 자연스럽게 가라앉는다고 합니다.
대체 어쩌다 다쳤냐고 물어보길래 공에 맞았다고 하니 의아해합니다. 보통은 눈을 둘러싼 뼈가 충격을 대신 받기에 망막이 손상되는 경우는 드물다고요. 친구가 정확히 안구를 겨냥해 공을 던졌나봅니다.
의사 선생님은 안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붓기가 가라앉으면서 망막이 떨어져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대략 2%의 망막진탕 환자가 8주 내로 망막박리로 발전합니다. 저는 아직 98%에 속하고요. 앞으로도 그러고 싶습니다.
잘 회복하는 방법은 하나인데요. 눈에 힘을 주지 않는 겁니다. 재채기, 고개 숙이기, 엎드려 자기, 화장실에서 볼일 보기, 복압을 주는 모든 종류의 운동이 해당됩니다. 그래서 지난 3주간 바람에 휘날리는 종이 인형처럼 지냈습니다.
맨 처음 질문을 드렸죠. 망막을 얼마나 아시냐고요. 저는 조금은 알게 됐습니다. 시야의 3분의 1이 사라지는 인정사정없는 방식으로 망막의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여러분은 망막의 존재를 알게 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저는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글이나 열심히 써야겠습니다. 모두 망막 조심하는 한 주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