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레터 vol. 066] | 2025.06.04
안녕하세요. <디지털 인사이트> 이민호 기자입니다. 모두가 눈물을 닦은 시점에 뒤늦게 <폭삭 속았수다>를 보고 있습니다. 이제 막 8화를 다 본 참인데요.
8화에는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반지를 훔쳤다는 누명을 쓴 금명이를 가정부 아주머니가 구해주는 장면인데요. 왜 금명이를 도와주냐며 "걔 알아?" 소리치는 집주인에게 가정부 아주머니는 "안다"라고 느긋하게 말합니다.
가정부 아주머니가 금명이를 도와준 건 금명이가 엄마를 쏙 빼다 박았기 때문입니다. 소싯적 자칫 여관에서 어머니 유산이 든 가방을 도둑맞을 뻔 한 걸 금명의 부모님이 도와줬고, 금명의 얼굴을 보고 바로 그때 자신을 도와준 부부의 딸임을 직감한거죠.
이 장면이 마음에 드는 건 제가 '카르마(कर्म, Karma)'를 믿기 때문인데요. 산스크리트어인 카르마는 본래 행위나 행동을 의미하는 단어였지만, 지금은 불교에서 '업(業)'을 의미하는 단어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즉 나의 모든 말과 생각, 그리고 행동이 나를 만든다는 건데요. 좋은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면 세상도 나에게 좋은 일을 선물해주고, 나쁜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면 세상도 응당한 대가를 준다는 겁니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모여 나를 만든다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진리 같지만, 분명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는 구석이 있습니다. 이 실타래를 조금 더 풀면 내가 세상을 대하고 바라보는 방식이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를 결정한다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반야심경에서는 "공즉시색, 색즉시공(空卽是色, 色卽是空)"이라 말하며 세상의 모든 건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조건에 따른 현상이라고 이야기하고,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저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세계는 나의 주관이 만든 표상"이라고 주장합니다.
두 주장을 제가 얼마나 깊이 있게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이 두 이야기가 앞서 이야기한 "세상은 내가 보는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이야기로 귀결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지니고 살아가는 마음이 곧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되고, 그게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를 결정한다는 거죠. 따뜻한 마음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면 응당 세상은 나에게 따뜻한 곳으로 다가오기 마련일 겁니다.
물론 항상 맑은 날만 있을 수는 없듯이 그럼에도 군데군데 힘들고 슬픈 날들도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남몰래 금명이를 구해준 가정부 아주머니처럼 세상 곳곳이 내가 뿌린 다정함의 씨앗을 나눠줄 터이니, 지나고 보면 꽤 괜찮은 세상이었다고 회고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야기가 길었습니다만, 어쨌듯 저는 <폭삭 속았수다>를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퇴근길에 기회가 된다면 어르신께 자리 양보처럼 착한 일 하나쯤은 하고, 9화를 이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오늘 작은 친절과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는 하루를 보내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착한 일 하나 해내셨다면 칭찬 도장도 찍어드려야겠네요. 그럼 미리 오늘 하루도 폭삭 속았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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